대기업에서 근무할 때 일이었습니다.(이 대기업은 경력직으로 입사한 2번째 회사였습니다)

그 당시 그 기업에서는 매주 임원회의에서 경영관련 중요한 책들을 요약하여 회장님 앞에서 각 계열사 부사장들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하나의 책을 각 계열사가 어떻게 적용하여 회사 경영에 활용할 것인가를 발표해야 된다는 점입니다.

즉, ‘동일한 하나의 책’을 가지고 각 계열사가 발표하다 보면, 각 계열사는 은근히 회장님 앞에서 서로 경쟁하게 됩니다.

운이 나쁘게도, 이런 자료를 정보기획팀에 있는 제가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기획서 작성법

언제나처럼 윗 분들은 시간을 별로 주지 않습니다.

임원회의는 매주 월요일에 있었는데, 부사장님은 화요일에 저를 불러서 ‘경영전략 발표’ 자료를 만들라고 지시하시면서 금요일에 보자고 하셨습니다.

다행인 것은 발표해야 될 책은 내가 이미 읽은 상태였습니다.

기획자이다 보니, 나의 머리는 시간에 따라 계획됩니다.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그러면 기획서를 작성할 시간은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로 3일간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오늘 화요일에는 기초적인 내용을 수집하고, 수요일에는 전체 프레임과 내용을 구성하고, 목요일에는 마무리하고 금요일 아침에 보고하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기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기획서를 만들기 위해 ‘3일’이면 그리 긴 시간이 아닙니다.(최소 20장 정도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어쨌든, 머리 속의 시간표대로 기획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왜 우리는 기획서를 만들기 시작하면 왜 이렇게 인터넷을 보고 싶고 집중이 안될까요?)

부사장님이 처음 지시한 내용이라, 엄청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화요일, 수요일은 야근까지 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목요일은 거의 밤을 새다시피해서 만들었습니다.

대망의 금요일이 왔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아침 10시에 부사장님이 한마디 하시더군요…

“자료 좀 보자…”

이미 전날 밤에 완성해서 프린트 해 놓은 상태라, 빠르게 들고 갔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자료를 읽어가면서 전혀 만족해 하지 않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연필을 들고 수정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건 저렇게.. 저건 이렇게”

갑자기 마이크 타이슨(복서)의 말이 생각나더군요..

“누구에게나 멋진 계획은 있다.. 쳐 맞기 전에는..”

3일 밤낮으로 만든 기획서는 이렇게 “쳐 맞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대다수 ‘상사’와는 다르게 부사장님은 정확히 지적해주셨습니다.

“이건 저렇게.. 저건 이렇게” 수정하라고…

하지만 문제는 수정해서 와야 할 자료를 앉아서 보니, 완전히 다시 만들어야 되는 지경이었습니다.

부사장님은 수정된 자료를 주시면서 한마디 더 하셨습니다.

내일 오전에 보자…(내일 오전은 토요일 휴일입니다..)

나의 계획은 금요일 보고 한 후, 주말은 편히 쉬어야지 했으나..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기획자들은 생각합니다.

‘아니 이럴 거면 처음부터 이렇게 써서 주든가??’

하지만 나중에 알았지만 직장 내 거의 모든 상사들은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즉.. 기획자가 초안을 가지고 가면 그것을 토대로, 수정할 것을 지적하며 내용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수정해야 될 내용을 살펴보니… 수정해야 될 게 너무 많았습니다.

다행이 이런 경우에는 기존 자료를 가지고 수정하는 것 보다는 새로 만드는게 훨씬 낫다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와서 다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파워포인트로 기획서를 만드는 저의 프로세스는 5단계로 다음과 같습니다.

1. 파워포인트 컨셉 확정(내용 및 전략에 따른 전체적인 디자인 방향)
2. 파워포인트 템플릿 작성(작성할 내용에 따라 그림 + 글씨, 글씨 크게 하는 등의 구성 방법)
3. 내용 작성(작성과 동시에 필요한 이미지는 내용에 따라 선택(찾기))
4. 전체 내용 재검사(오타 수정 및 디자인 미비점 수정)
5. 프린트(프린트는 반드시 해봐야 됩니다. 컴퓨터 화면과 프린트는 완전히 다르며 특히 폰트 가독성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기획서를 만들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1번과 2번 작업이 은근히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나 사실 처음보다는 쉽습니다.

맨 처음에는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지만 두 번째는 ‘컨셉’과 ‘내용’이 있으니깐요..

그렇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내일 토요일 오전까지입니다.

또 기획자의 머리는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점심 먹고 1시부터 시작하면 저녁 10시까지면 9시간…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합니다. 30분에 1장은…

하지만 1시간에 1장은 가능할거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밤을 새야 됩니다. 20장이면 20시간이니깐요…

결국 밤을 새웠습니다.

토요일 아침 8시에 자료가 완성됐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토요일 아침 10시에 부사장님 출근하셨습니다.

“자료 좀 보자”

부사장님은 자료를 훑어보시더니… 한마디 하셨습니다. “새로 만들었네…”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그날 토요일 집에 가자마자 그 다음날까지 18시간을 자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만든 자료는 임원회의에서 새로운 선례를 만들었습니다.

다른 계열사들 역시 디자이너까지 뽑으면서 자료를 만들었으나, 내용은 언제나 좋아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템플릿만 가지고는 기획서를 만들 수 없는 이유입니다.

기획서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기획서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내용(컨셉과 방향)은 정확히 무엇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정확한 내용’입니다.

템플릿도 중요하지만 사실 ‘정확한 내용’을 이해하고 있어야 멋진 기획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냥 막연히.. 추진배경, AS-IS, TO-BE, 일정 계획 같은 내용만 가지고 기획서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정확한 내용을 알고만 있다면,

이에 맞는 템플릿 스타일과 이에 맞는 디자인, 이에 맞는 이미지 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템플릿과 디자인만 가지고 기획서를 만들수가 없습니다.

즉, 기획서 내용 다음에 템플릿과 디자인이 결정되는 것이지, 템플릿과 디자인을 선택해서 기획서 내용을 넣는다면 절대 멋진 기획서는 나올 수 없습니다.

내 기획서가 ‘허접’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정확한 내용’을 이해하지 않고 템플릿과 디자인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내 기획서를 ‘멋지게’ 만들고 싶다면 ‘정확한 내용’을 먼저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다음호에는 멋진 기획서 만들기를 위한 실무 예제 등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오늘도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