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쩐지 이상하다 했습니다.
챗GPT 열풍이 불기 시작한 2023년, 애플의 전 개발자 존 버키가 시리에 대해 언급했던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 애플이 ‘애플 인텔리전스’라는 이름으로 시리의 진화를 발표했을 때, 또 한 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존 버키는 시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시리에 조금이라도 복잡한 기능을 넣으려면 최소 1년은 걸립니다.”
그런데 애플은 마치 시리가 곧바로 첨단 생성형 AI로 진화할 것처럼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시리는 2011년 아이폰 4S와 함께 세상에 첫선을 보였을 때만 해도 ‘혁신’ 그 자체였습니다.
스마트폰에서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고, 정보를 검색하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개념은 당시로서는 정말 획기적인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시리는 더 이상 기술 혁신의 상징이 아닙니다.
오히려 “왜 아직도 이 수준인가?”라는 비판이 따라붙는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시리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을 짚고, 왜 시리가 실패한 AI로 평가받게 되었는지를 분석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시리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기술적, 조직적 문제를 살펴보고, 한국 사용자 입장에서 어떤 대안이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시리의 탄생: 기대 이상의 기대
2010년, 애플은 시리(Siri Inc.)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음성 인식 기반의 AI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듬해인 2011년, 아이폰 4S와 함께 첫선을 보인 시리는 당시 기준으로 획기적인 기술이었습니다.
자연어를 이해하고 대답하는 기능은 구글 검색이나 단순 명령 수행 앱들과 차별화되었고, 사람들은 시리를 통해 애플과 함께 미래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출시 이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업그레이드 없는 10년: 느린 진화의 대가
2014년, 시리 업그레이드 개발을 맡은 존 버키(John Burkey)에 따르면, 시리의 구조는 지나치게 복잡하게 설계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시리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선 모든 코드를 다시 빌드해야 했고, 단순한 업데이트에도 몇 주가 소요되었으며, 조금이라도 복잡한 작업을 추가하려면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시리를 끊임없이 뒤처지게 만들었습니다.
애플은 경쟁사인 구글 어시스턴트, 아마존 알렉사처럼 지속적 업데이트와 기능 개선을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2020년대 중반이 되어도 시리는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기본적인 계산이나 캘린더 작업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내부 분열과 리더십 부재: AI 전략의 결함
2025년 4월, 더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애플의 시리 및 애플 인텔리전스 프로젝트는 내부 혼란으로 인해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합니다.

초기에 애플은 iOS 18에 탑재될 시리용 백엔드 시스템으로 ‘Mini Mouse'(소형 언어모델)와 ‘Mighty Mouse'(대형 언어모델) 두 가지 방향을 고려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수차례 기술적 방향 전환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개발자들이 대거 이탈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내부 관계자들은 시리 개발을 담당하는 AI/ML 부서가 AIMLess(AI 없는)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으며, 시리는 “뜨거운 감자”처럼 계속 팀을 옮기고 있으며, 실질적 개선 역시 단 1도 없다고 합니다.
당시 AI 수장 존 지안난드레아(John Giannandrea)는 시리 개선을 위해 자체 데이터와 웹 스크래핑 개선이 답이라고 믿었으며, 2022년 챗GPT가 등장했을 때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2023년, 애플 내부 지침으로 외부 언어 모델을 제품에 직접 포함시키는 것을 금지했고, 성능 비교에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시리는 OpenAI의 챗GPT에 비해 현저히 성능이 떨어졌습니다.
무기력한 개선, 허위 데모: 신뢰에 금이 가다
시리 리더였던 로비 워커(Robby Walker)는 “hey Siri”에서 “hey”를 제거하는 데 2년을 투자했으며, 정서 민감도 향상을 위한 LLM(대규모 언어 모델) 적용 제안도 반려했습니다.

워커는 대규모 혁신보다는 응답 속도 개선 같은 소소한 성과에만 집중했습니다.
애플 비전 프로용으로 개발되던 프로젝트 “Link”는 앱 제어 및 음성 명령 지원 등을 목표로 했지만, 시리 팀의 역량 부족으로 대부분 폐기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WWDC 2024에서 시연된 애플 인텔리전스의 고급 기능(예: 이메일에서 실시간 비행 정보 추출, 메시지를 기반으로 점심 일정 확인, 지도에서 동선 설정)은 시리 팀조차 본 적 없는 ‘가짜 데모’였습니다.
실제 작동된 유일한 기능은 화면 테두리에 뜨는 시리 불빛뿐이었습니다.
이는 애플이 예전에는 실제로 작동하는 기능만 발표했던 방식과는 매우 다른 발표 방식이었습니다.
기술적 한계: 생성형 AI는커녕, 검색도 못 한다
시리의 가장 큰 약점은 단연코 ‘생성형 AI 기능의 부재’입니다.
챗GPT, Google 제미나이(Gemini), 삼성의 갤럭시 AI까지 모두 사용자의 질문을 분석하고, 문장을 새로 생성하며, 맥락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반면 시리는 여전히 “설정 열어줘”, “타이머 맞춰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애플은 2024년 말, iOS 18.1부터 “애플 인텔리전스”라는 이름으로 생성형 AI 기능을 제공한다고 발표했으며, 시리와 통합한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애플 인텔리전스와 통합된 완성형 시리를 2026년으로 연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M1 칩 이상을 탑재한 최신 기기에서만 애플 인텔리전스를 사용할 수 있어, 대다수 사용자들은 기본 혜택 조차 받지 못합니다.
보안 vs 사용성: 애플 특유의 딜레마
애플은 항상 “보안”를 최우선으로 내세워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AI 발전을 저해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모든 음성 명령을 기기 내 처리(On-device Processing)한다는 전략은 구글처럼 클라우드 기반 모델을 통한 딥러닝 발전을 활용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시리는 더 안전할 수는 있어도, 더 똑똑하지는 않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러한 모순은 앞으로도 애플이 풀기 어려운 문제로 남을 것입니다.
시리에 대한 사용자 불만과 대안들
사실 한국 사용자 입장에서 시리는 이미 외면당한 기능입니다.
삼성의 빅스비조차도 점점 쓸만해지고 있으며, 많은 사용자는 아이폰에서 아예 시리를 꺼버리거나, 챗GPT, 퍼플렉시티(Perplexity) 같은 앱을 통해 AI 기능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시리 대체 앱”, “아이폰에서 시리 끄는 법”, “iOS AI 비서 추천”과 같은 키워드가 구글 및 네이버에서 높은 검색량을 보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특히 챗GPT의 아이폰 앱이 음성 기능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진짜 시리’는 오픈AI가 되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향후 전망: 시리, 회생 가능성은 있는가?
2025년 현재, 시리는 “위기”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그 기회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 시리 구조 개편: 기능 단위 업데이트가 가능한 모듈형 설계로 전환
- 애플 인텔리전스와의 완전 통합: 단순한 음성 명령이 아닌, 생성형 문장 이해 및 대화형 응답
- 한국어 포함 다국어 지원: 영어 이외의 언어 폭넓은 사용자 경험 개선
- 서드파티 앱 연동 강화: 시리 단독 기능이 아닌, 외부 도구와의 연동성 확보
다행히 애플의 소프트웨어 개발 부사장인 크레이그 페더리기와 AR 총괄 부사장인 마이크 록웰이 주도하는 새로운 리더십 하에서 시리 팀은 외부 오픈소스 모델까지도 적극 활용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으며, 변화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기술이 아니라 전략의 실패
시리는 단순히 기술이 부족해서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전략과 철학의 부재에 있었습니다.
명확한 방향 없이 흘러가는 리더십, 혁신보다는 안정을 택한 조직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사용자 경험을 외면한 개발 방식이 시리를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든 결정적 요인입니다.
반면 경쟁사들은 사용자의 요구와 피드백을 빠르게 반영하며 AI 기술을 매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애플은 ‘완성된 기능만 출시한다’는 원칙 아래 시리를 오랫동안 방치해 왔고, 그 대가는 지금처럼 경쟁에서 뒤처진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라도 애플이 진심으로 시리를 다시 살리려면, 기술적인 보완보다 먼저 근본적인 전략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철학을 바꾸고, 문화와 구조를 개혁하며, 시대의 흐름에 맞는 사용자 중심 사고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시리는 향후 AI 시장에서도 영원히 뒤처진 이름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